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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trī: 의미와 개념

자애, 네 가지 거룩한 머묾, 그리고 깨어난 마음이 지닌 벗의 성품

뿌리: 벗을 뜻하는 Mitra

Maitrī(산스크리트어)와 이에 해당하는 팔리어 mettā는 모두 벗을 뜻하는 어근 mitra(산스크리트어) / mitta(팔리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애의 성품은 그 뿌리에서 보면 참된 우정의 성품입니다. 관심사가 같거나 서로 이득이 되어 맺는 한정된 우정이 아니라, 아무것도 돌려받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상대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깊은 우정입니다.

mitra라는 말은 《리그베다》에 고유한 이름(계약과 우정을 맡은 베다의 신 미트라)으로도, 일반 명사로도 나옵니다. 가장 오래된 뜻은 ‘동반자’ 또는 ‘동맹’, 곧 믿을 수 있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maitrī는 이 오래된 신의의 우정을 모두에게로 넓힙니다. 나의 동반자에게만이 아니라, 예외 없이 모든 존재에게로요.

사무량심(Brahma-Vihāra)

Maitrī는 네 가지 Brahma-vihāra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글자 그대로는 ‘거룩한 머묾’ 또는 ‘거룩한 거처’라는 뜻이며, 한계 없이 기른다는 점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마음’(apramāṇa, 무량심)이라고도 옮깁니다. 이 네 가지 성품이 함께 불교에서 이해하는 사랑의 온전한 꽃핌을 이룹니다. 감정만이 아니라, 능동적인 지향이자 수행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실제로 이 넷은 따로 떨어진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근본 지향이 지닌 네 가지 차원입니다. 열려 있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존재를 맞이하는 것이지요. 하나하나가 다른 것이 홀로 다룰 수 없는 부분을 맡습니다. karuṇā 없는 maitrī는 괴로움 앞에서 안일해질 수 있습니다. upekkhā 없는 karuṇā는 절망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maitrī 없는 muditā는 얕아질 수 있습니다. 나머지 셋 없는 평정은 차가워질 수 있습니다. 넷이 함께할 때, 드넓으면서도 오래 이어 갈 수 있는 사랑이 됩니다.

가까운 적과 먼 적

불교 심리학은 사무량심 각각에 대해 ‘먼 적’(그것을 무너뜨리는, 누가 봐도 반대되는 성품)과 ‘가까운 적’(그것과 닮았지만 안에서부터 은근히 허무는 성품)을 꼽습니다. 이 구분을 이해하는 것은 실제 수행에서 중요합니다.

maitrī의 먼 적은 악의(byāpāda)입니다. 해를 바라는 마음, 곧 정반대의 성품이지요. 이것은 분명히 드러나기에 알아보고 맞설 수 있습니다.

maitrī의 가까운 적은 집착(upādāna)입니다. 자애처럼 보이지만 실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소유하려 들고 조건이 붙은 따스함입니다. 인정, 충성, 통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요. 집착은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요”라고 말하지만, 그 속뜻은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당신이 행동하기를 바라요”입니다. 참된 maitrī에는 이런 움켜쥠이 없습니다. 상대의 행복이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을 때조차, 아니 바로 그럴 때 더욱, 그의 행복을 바랍니다.

Visuddhimagga(청정도론)는 가까운 적이 알아보기 더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소유하려는 집착을 자애로 착각하고, 자신의 ‘사랑’이 원망이나 조종, 의존을 낳을 때 당혹스러워합니다. maitrī의 수행은 어느 정도는 이 차이를 자신의 경험 속에서 배워 가는 수행입니다.

Maitrī와 보리심(Bodhicitta)

대승 불교에서 maitrī는 모든 존재의 이로움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서원인 bodhicitta(보리심)의 뿌리 가운데 하나로 여겨집니다. 보리심에 관한 대승의 가르침은 maitrī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오래가는 행복에는 지혜와 해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이 성품들을 끝까지 가꾸겠다는 서원으로 이끌리게 됩니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내가 아끼는 이들, 결국에는 모든 존재를 위해서요.

산티데바는 자타상환, 곧 다른 이의 안녕을 나의 안녕만큼 진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 maitrī의 가장 깊은 표현이자 보리심으로 가는 곧은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감정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수행을 통해 시간을 들여 길러 가는 동기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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