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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Śānti

베다의 평화 기원에서 아시아 곳곳의 불교 평화 운동까지

베다의 기원: Śānti-Pātha

śānti라는 말이 문헌에 처음 쓰인 예는 베다 문헌에 있습니다. 베다 의식의 처음과 끝, 그리고 공부를 시작할 때 외는 평화의 기원인 śānti-pātha 속에 이 말이 나옵니다. 이 짧은 기도는 하늘과 땅과 물, 초목과 신들, 브라흐만(궁극의 실재), 그리고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모든 영역에 평화를 청합니다. 이 말은 그저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 어린 독송으로 불러내는 것이며, 의도를 세우면 어떤 공간이나 상황에도 깃들게 할 수 있는 성품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기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케나 우파니샤드》의 기원은 oṁ śāntiḥ śāntiḥ śāntiḥ, 곧 ‘옴, 평화, 평화, 평화’로 끝맺습니다. 이 세 번의 맺음말은 인도 관조 전통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정형구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불교 수행에도 이어져 오늘날까지 여러 전통에서 독송되고 있습니다.

초기 불교: 서늘해진 이

부처님께서는 해탈한 마음의 성품을 설명하실 때, 오래된 베다의 이미지와 공명하는 말을 고르셨습니다. śānti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sīti(‘서늘한’을 뜻하는 팔리어)입니다. 깨달은 이는 때로 sītibhūta, 곧 ‘서늘해진 이’라 불립니다. 무더운 날의 그늘이 주는 안도, 모든 것을 삼키던 불길이 잦아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지요. 이 표현은 불교의 해탈을 śānti의 전통과 의도적으로 잇습니다. 깨달음은 궁극의 평화입니다.

팔리 경전에서 śānti(팔리어: santi)는 Dhammapada(법구경)와 경장(Sutta Piṭaka) 곳곳에 수행의 핵심 열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납니다. 《대반열반경》(Mahāparinibbāna Sutta)은 입멸을 앞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라”를 전하는데, 이 말씀 자체가 가장 깊은 śānti, 곧 더는 지킬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의 평화를 드러냅니다.

산티데바: 평화의 보살

8세기 대승의 철학자이자 수행승인 산티데바(Śāntideva)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평화의 신성한 이’(śānti + deva)를 뜻합니다. 그의 대표작 Bodhicaryāvatāra(입보리행론)에는 많은 스승들이 지금까지 쓰인 내면의 평화에 관한 가르침 가운데 가장 깊다고 꼽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욕(kṣānti)을 다룬 제6장입니다.

산티데바의 논지는 정확합니다. 분노는 평화와 공덕을 가장 크게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해독제는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정당하게 느껴지더라도 분노는 오해에서, 구체적으로는 일이 지금과 다를 수 있거나 달라야 한다는 전제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해를 통해 길러진 인내는 참된 śānti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수동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이 어느 한 사람의 뜻을 훨씬 넘어서는 원인과 조건의 결과임을 능동적으로, 또렷이 알아보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불교 평화: 살아 있는 전통

개인의 수행이자 사회의 염원으로서 śānti는 불교 아시아 곳곳에서 여러 모습을 띠어 왔습니다. 상좌부 사회에서는 평화를 불러오는 경, 특히 Mahā-maṅgala Sutta(길상경)와 Ratana Sutta(보배경)를 정기적으로 독송하는 의식이 수백 년 동안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이 독송은 독송하는 이들뿐 아니라 그것이 울려 퍼지는 공간과 공동체에도 평화를 가져온다고 여겨집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수행을 마칠 때마다 공덕을 회향하는 것, 곧 그로써 생긴 평화와 선함을 모든 존재와 나누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수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 한국, 일본의 불교 공동체는 이 원리를 중심으로 정교한 의례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평화는 혼자 간직하는 소유물이 아니라 바깥으로 흘러가 나눌 수 있는 성품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여러 불교 스승이 내면의 평화와 사회의 평화가 이어져 있음을 특히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개인의 관조 수행과 사회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일이 떼려야 뗄 수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참여 불교(Engaged Buddhism)’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태국의 술락 시와락(Sulak Sivaraksa)도 비슷한 비전을 펼쳤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śānti의 전통에 기대어, 그것을 전쟁과 불의, 환경 파괴라는 오늘의 문제와 대화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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